“종교자유 찾아 월남한 실향민들이 세운 해방 교회”
한국전쟁 발발 74주년을 맞아 한국 서울의 해방교회(위임목사 박영국·사진) 한동성 장로와 만인희 권사가 본보를 방문하고 상호 관심사를 교환했다. 1947년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월남한 실향민들이 남산 밑 해방촌에 모여 들었다. 천막이 쳐지고 해방촌이 형성되면서 남대문교회 여전도회서 파송한 양소활 목사가 부임하며 해방교회가 설립되었다. 교회 신도들은 월남한 실향민들이 많았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중공군이 개입해 일어난 1·4 후퇴로 해방교회 성도들도 피난길에 오른다. 당시 시무했던 허 은 목사는 가족들만 피신 시킨 후 교회를 지키다 납북돼 순교했다. 교회에는 허 은 목사의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지역사회에 구심점이 되어 복음을 전해 온 교회에 대해 한동성 장로는 두 명의 원로목사가 추대되고 성도들이 존경을 담아 극진히 처우하는 점을 강조했다. 한 장로는 “여러 교회들이 원로목사를 추대하는데 있어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해방교회는 원로목사에 대한 교인들의 존경과 믿음으로 하나되어 원로목사님을 공경하고 섬기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로목사인 이승하 목사 는 1984년 해방교회에 부임해 22년 목회하다 2010년 박영국 목사가 해방교회로 부임했다. 부임 당시 박영국 목사는 “하나님의 교회를 잘 보존하고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현재까지 목회에 임하고 있으며 2024년 목회비젼을 ‘치유’에 두고 영과 혼, 마음, 가정과 교회, 일터와 마을이 치유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길 간구하며 목회를 해 나가고 있다. 해방교회는 장로교 전통을 이어받아 개인적인 목회 비전을 내세우기 이전에 “하나님의 교회를 잘 보존하고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목회에 임했다고 한다. 박 목사는 “지역과 가까운 관계로써의 교회”를 내세우고, 매일 전도하는 한편, 아기학교, 문화교실을 열어 교회를 지역주민에게 개방했다. 그리고 3부 예배에 영어통역서비스를 제공하고, 서울에 거주하는 다수의 외국인 및 한국어에 서툰 한인 2세들과 어울리며 예배 하기 시작했다. 겸손한 성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박 목사는 성도들에게도 늘 ‘평화’를 강조한다. 박 목사는 “교회에 열심히 봉사한다고 해서 교회에 유익한 것이 아니며, 예수님의 마음처럼 겸손하게 타인을 존중하면서 맡겨진 일을 할 때 좋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면서 “사랑과 배려를 통해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목회는 사적인 욕심을 채우는 자리가 아닌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했다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이라고 했다.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종교자유 실향민 해방교회 성도들 해방 교회 남대문교회 여전도회